밤은 오늘도 변함없이 내려앉았다

밤은 오늘도 변함없이 내려앉았다  
낮 동안 쌓여 있던 소리들이  
어느새 자취를 감추고  
창밖 불빛만이 가만히 남아 있다  
사람들의 발걸음도 멈추고  
도시는 숨을 고르는 듯 고요해진다  
그 속에서 나도  
잠시 멈춰 오늘을 되돌아본다

크게 특별할 것 없는 하루였다  
아침에 눈을 뜨고  
늘 걷던 길을 지나  
똑같은 일들을 해내고  
익숙한 사람들과 스쳐 지나며  
시간은 자연스럽게 흘러갔다  
누구에게 들려줄 만한 이야기 하나 없이  
그저 그런 하루가 또 지나갔다

예전에는  
이런 날들이 조금 아쉽게 느껴졌다  
뭔가 더 해야 할 것 같고  
무언가 남겨야만  
내가 잘 살고 있는 것 같아서  
하루가 특별하지 않으면  
괜히 내 마음도 빈 것 같고  
조급해지던 때도 많았다

그런데 요즘은  
그런 마음이 조금씩 희미해진다  
크게 눈에 띄지 않아도  
성취를 쌓지 않아도  
내가 내 자리에서  
묵묵히 하루를 살아냈다면  
그걸로 충분하다고  
조용히 받아들이게 된다

생각해 보면  
삶의 대부분은  
이렇듯 평범한 날들로 이루어져 있었다  
화려하지도, 요란하지도 않은 시간들이  
내 삶을 천천히 만들어왔다는 걸  
살아가면서 조금씩 알게 된다

오늘도  
출근길에 불어온 바람  
햇살이 비쳤던 창가  
우연히 들려온 노래  
점심시간 짧게 흘러간 웃음  
그런 사소한 순간들이  
하루의 빈틈을 조용히 채우고 있었다

그래서 더 이상  
애써 특별해지려 하지 않는다  
누구보다 앞서가려  
조급해하지도 않는다  
오늘 하루  
내가 내 속도로 잘 견뎌냈다면  
그걸로 충분하다  
스스로에게 조용히 말해본다

불을 끄기 전  
창문을 열어본다  
밤공기는 서늘하고  
멀리서 희미한 소리만 들린다  
세상은 고요하고  
그 속에서 나도  
천천히 숨을 고른다

내일도 오늘과 크게 다르지 않을 것이다  
크게 기대하지 않아도  
눈에 띄는 변화가 없어도  
그 하루 속에서도  
분명 또 다른 작은 순간들이 찾아올 것이다  
그리고 그 순간들이  
조용히 쌓여  
내일의 나를  
조금 더 단단하게 만들어줄 거라는 걸  
나는 이제 알고 있다

그렇게 또 하나의 밤이  
소리 없이  
천천히  
내일로 이어진다